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산 여중생 자매 백골 시신 사건 (문단 편집) == 사건의 진상 == 이진호의 아내 정 씨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학습지 판매원으로 일했는데 팀장이 되기 위해 빚을 내 가면서 무리하게 학습지 판매를 강행[* 빌린 돈으로 교재를 사서 [[인터넷]]에 염가로 파는 방식]하다가 [[2010년]] [[9월]] 이런 방식을 회사에 들켜 [[징계]][* 팀장 직위 박탈로 평사원 직위로 강등되었다.]를 받게 되었다. 결국 1억 3,000만 원이나 되는 빚을 견디다 못 한 아내[* 큰딸의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교복]]을 살 돈마저 없었다.]는 이진호[* 당시 집 전세금을 털어 아는 사람들을 모아 [[용산전자상가]]에서 컴퓨터 관련 사업을 했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스티로폼 공장 기능공으로 일하고 있었다.]에게 동반자살을 권유하고 이진호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진호는 초반에 아내가 권유하는 것을 만류했지만 설득에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이진호의 가족이 얹혀 살던 이진호의 누나가 살던 집도 월세가 밀려 어려운 처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2011년]] [[2월 14일]]에 가족여행을 명목으로 딸들을 데리고 나와 [[포천시]]의 [[민박]]집에서 숙박한 이진호와 아내 정 씨는 자녀가 잠들자 [[번개탄]]을 피워 동반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과정은 다음과 같다. * 이진호는 가족들과 집을 나선 후 오후 5시쯤에 [[포천시]] [[이동면(포천)|이동면]] 백운계곡에 위치한 어떤 민박집의 3호실에 투숙하게 되는데, 두 딸을 일찍 재우고 난 뒤에 이진호는 밤새도록 아내를 설득했으나 아내는 [[자살]] 의지가 확고했으며 설득에 실패한 이진호는 차라리 아내를 따라 죽겠다며 체념했다. * 다음 날 오후 1시 20분쯤 이진호는 아는 사람으로부터 21만 원을 입금받았고 근처 [[편의점]]에서 유서를 쓰려고 편지지와 편지봉투와 볼펜 한 자루를 사서 민박집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 두 딸은 영문도 모른 채 방 안에서 놀고 있었는데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 안에서 이진호와 아내는 유서를 써내려갔다. * 아내 정 씨의 유서는 다음과 같았다. >[[요제프 괴벨스|잠시 후 저희 손으로 아이들 목을 졸라야 합니다.]][* 어쩌면 여기에서 범행을 저지를 것이 암시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런 부모가 또 있을까요? >사는 것 보다 죽는 게 모든 사람에게 더 큰 피해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 이진호가 매형에게 쓴 유서는 다음과 같았다.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남아서 천덕꾸러기가 될 것 같아 저희가 데려갑니다. >불쌍한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죽을 각오로 잘 살아보려[* 당시 이진호의 용산전자상가 컴퓨터 사업과 아내 정 씨의 학습지 판매원 일로 서로 돈을 벌어 잘 살아 보려고 했던 것을 말한다.] 했는데 현실은 너무 무섭습니다.[* 이진호의 컴퓨터 사업 실패와 아내 정 씨의 염가판매 행위에 의한 징계로 생계가 막막해짐을 말한다.] >어제도 결정을 해서 행동으로 옮기려 했으나 아이들의 눈이 밟혀 못했습니다. * 오후 5시 즈음에 이진호는 이동우체국에서 [[우표]]를 사서 두 장의 유서를 [[우체통]]에 넣고 밤 11시쯤에 다시 투숙하였고 이진호는 자던 중에 살며시 일어나서 민박집의 주방 [[가스레인지]]와 연결되어 있는 LPG 가스통의 호스를 칼로 반쯤 자른 뒤에 밖으로 나가 고기를 구워 먹겠다는 구실로 민박집 주인으로부터 받은 번개탄 2장에 불을 붙이고 주방 안에 있던 냄비에 넣었다. 이때 정 씨가 말 없이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 하지만 막내 딸이 자다가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던 중에 번개탄이 들어있는 냄비를 밟고 넘어지자 우당탕 하는 소리에 놀라서 잠이 깨 번개탄이 건들어짐을 눈치챈 이진호는 환기를 시킨답시고 창문을 열고는 번개탄을 창 밖으로 던졌다. * 그 다음날 오전 11시에 민박집을 나온 이진호의 가족은 [[일동면]] 화대리 부근 제일유황온천 부근에 있는 식당에서 아점을 먹었는데 주차장으로 나온 정 씨는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는 죽기로 했으니 너희들은 [[보육원]]에 보내주겠다”며 처음으로 죽음을 암시했다. 큰딸은 울면서 따라 죽겠다고 했고 작은 딸은 울기만 했다. * 오후 6시 쯤에 이진호는 지인에게 빌린 돈 15만 원을 근처 [[농협]]에서 찾아 산정호숫가에 있는 한 숙박업소로 이동했다. 길가에 있는 마트에서 [[막걸리]]와 [[소주]]를 각각 2병 사고 번개탄을 3장 구입했고 2월 16일 새벽 2시 쯤 졸음을 이겨내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까스로 다독여 차에 태우고 호숫가 공터에 차를 세운 후 불붙은 번개탄 3장을 냄비에 담아 차에 같이 타고 있던 정 씨의 다리 밑에 놓았는데 잠을 청한 지 2시간 쯤 지난 새벽 4시에 두 딸이 괴로워하면서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하자 이진호는 딸들이 있는 뒷자리로 넘어가 작은딸부터 목을 조르고 정 씨는 발버둥치는 아이들 다리를 잡았다. 결국 두 딸은 호흡 곤란으로 사망했다. * 이진호와 아내는 깨어난 두 딸을 목 졸라 숨지게 한 후 자신들도 죽을 마음으로 차를 몰아 여우고개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그 충격으로 자매의 시신이 차 밖으로 튕겨 나가고 말았지만 이진호와 아내는 습관적으로 [[안전벨트]]를 맨 채 절벽 아래로 차량을 몰았고 절벽 20m 지점에서 차량이 나무에 걸려 충격이 완화되어 세 번째 자살 시도도 실패했다. 이렇게까지 일이 꼬이자 이진호는 돌로 아내의 머리와 자신의 머리를 순차적으로 내려쳤지만 죽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자 이진호와 아내는 영하의 날씨에 저체온증으로 동사하기 위해 옷을 벗기까지 했으나 역시 죽진 않았고 지나가던 사람에 의해 발견되어 기절한 후 깨어났다. 다섯 번에 걸친 자살 시도가 전부 무위에 그치자 이진호와 아내는 그때서야 생존을 선택했다. 이진호와 아내는 지인에게 약간의 돈을 빌려 동상과 머리의 상처를 치료한 후 검거 전까지 2년 동안 [[진천군|진천]][* 진천에서는 오이 농장에서 일했다.], [[강릉시|강릉]], [[밀양시|밀양]], [[부산]] 등에서 일용직 근로 생활을 하면서 숨어 지내는 삶을 살다가 부산 기장에서 검거되었다. 당시 부산광역시 강서구 송정동에 거주하던 A(당시 52세)씨가 업무차 인근 은행을 찾았다가 이진호가 수배 전단에 있음을 봤는데 자신의 집 근처 농장에서 이진호가 일하는 걸 목격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했다. 그리하여 [[징역]] 10년을 선고[* 항소하였으나 항소심도 기각되었다.]받은 이진호는 [[2023년]] [[4월 9일]]에 만기출소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